새벽부터 비가 흥건하게 내리고 있다. 10월 하순의 비는 필연적으로 추위를 초대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세인들은 마치 시베리아에 사는 사람들 모양으로 완전무장을 할 게 틀림없다.
또한 요즘 사람들은 전기와 기름, 도시가스 등으로 난방을 한다. 그러나 과거엔 화롯불이 대세였다. 잉걸불로 활활 타는 화롯불은 할머니가 관리하셨는데 그 안에 고구마와 밤 따위를 넣어 구워먹는 맛은 정말로 일미였다.
하지만 화로에 밤을 구울 적엔 반드시 칼집을 내줘야만 했다. 그렇지 아니하면 흡사 폭탄인 양 뻥뻥 터지기 일쑤였다. 또한 그렇게 구워진 밤은 마치 미사일처럼 마구 날아다닌 통에 자칫하면 화재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화롯불은 비단 가족들의 난방도구와 고구마와 밤의 굽기 용구(用具) 뿐 아니라, 그 위에 얹은 된장찌개와 비지장 같은 음식물의 가열과 섭취에 있어서도 매우 훌륭한 일등공신이었다. 그 즈음엔 다들 그렇게 못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롯불에서 팔팔 끓는 된장찌개 내지 김치찌개만 달랑 하나 놓여 있더라도 그건 바로 만반진수(滿盤珍羞)라는 인식의 공유가 가능했다. 최근 작고하신 죽마고우의 모친께서도 나의 은인이셨지만 할머니 역시 나를 진정 사랑으로 키워주신 ‘천사표’ 유모할머니셨다.
할머니께선 진즉 상부(喪夫)하시고 애면글면 혼자 사셨다. 그러다가 엄마가 버린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나의 양육을 자청하셨다. 애초 아버지로부터 매달 얼마간의 양육비를 받는 조건이었지만 이내 흐지부지되었다.
그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은 무척이나 추웠다. 할머니의 산소 앞에서 나도 함께 묻어달라며 말도 안 되는 떼질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처럼 박복했고 심지어는 기가 막히는 인생길이긴 했으되 매일 비가 오는 건 아니듯 슬픔이란 것도 ‘언제나’ 라는 건 없었다.
눈물로 젖은 삶에도 밝은 빛이 스며들 듯 아내와 아이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해주었다. 재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비로소 가스로 난방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살았던 누옥에선 자그마치 10년 이상이나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
상황이 그처럼 어렵긴 했으되 아이들은 마부위침(磨斧爲針)의 각오와 당면한 가난과 생활고를 일종의 전패위공(轉敗爲功)으로 삼으며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열공’에 몰두했다. 따라서 나로선 연탄난로가 그 옛날 화롯불과 마찬가지로 정서의 만반진수(滿盤珍羞)까지 되는 셈이다.
지난 주말 아들과 딸이 모처럼 집에 왔으나 친구 모친상에 참석하느라 볼 수 없었다. 따라서 나름 계획했던 ‘만반진수’의 가족식사마저 무위에 그쳤다. 그렇긴 하되 아이들을 생각하는 이 아빠의 마음은 언제나 너른 금강(錦江)이요 또한 만반진수에 다름 아니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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