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그림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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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같은 그림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백영주의 명화살롱]마그리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 승인 2014-11-26 17:25
  •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 마그리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1928
▲ 마그리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 1928

벨기에 출신 대표적 초현실주의 화가… 왕립 아카데미서 미술 공부
기발하고 과감한 이미지, 그림 속 뒷이야기나 의도 상상하게끔 해



필자가 처음 본 마그리트의 그림은 음악실에 걸려 있던 <피레네의 성> 복사본이었다. 마치 판타지 소설의 삽화로나 나올 법한, 즉 현실성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돌과 그 돌로 깎아 만든 것 같은 성이 위화감 없는 필치로 이질적인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자칫 뻔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자연스러운 이질감에 끌려 마그리트의 다른 그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인물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중 가장 머리를 강타한 듯한 느낌을 받은 게 바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였다.

언뜻 보면 그림 속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화가로 보이는 남자와 누드모델로 선 듯한 여자.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자의 왼쪽 팔은 남자의 붓칠로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즉 여자는 화가의 작품이라는 것인데, 감상자의 눈에 남자만큼 입체적으로 보이는 여자는 마치 그림보단 조각상에 가까워 보인다.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여자는 한쪽 팔이 미완성처럼 보이는 조각상이고, 남자는 그 위에 색칠하는 모습을 화가가 상상해 그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게 가장 중요한 회화에서 이렇게까지 빙빙 돌아간 해석이 과연 맞는 건가 싶다. 오히려 마그리트의 모든 그림은 의미심장한 제목과 그에 맞는 초현실적인 요소를 배치하고 있기에 보이는 그대로 사람인지, 그림인지 즉시 판단하기 어려운 여자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 장-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
▲ 장-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남자, 완성돼 가는 여자… 많이 닮은 남과 여
자신의 조각을 사랑하게 된 신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떠올라


그림 속의 남자는 어떤 사연이 있어 감쪽같은 사람을 그려내고 있는 걸까, 거의 인간에 가까운 형상-특히 여성의 모습을 본떴다는 점에서 필자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떠올렸다. 여자의 결점이 너무 많다는 걸 느끼고 독신으로 살기를 결심했다가 손수 만든 완벽한 여인상을 사랑하게 된 피그말리온처럼 완벽한 여인을 꿈꾸고 있거나, 어릴 적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현재를 상상하며 붓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마그리트가 직접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면, 그림 속 남자에 화가 자신을 투영한 것 같기도 하다. 기발하고 과감한 이미지로 관람자들을 항상 익숙한 것들, 즉 선입견이나 패러다임과의 결별을 추구하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림 속 뒷이야기나 화가의 의도를 상상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1959
▲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1959

판타지 소설의 한장면 같은 '피레네의 성' 자연 법칙을 거스른 초자연적인 모습
1950년대 작품에 육중한 바위·돌 자주 등장… 마그리트의 '석기시대'라 부르기도


마그리트는 1916년에 브뤼셀의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10년이 지나 라상토르 화랑과 계약을 맺으면서부터 회화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포스터 및 광고 디자이너 등의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는데, 그때 요구된 재치나 센스 등이 작품 활동에서도 빛나 지금의 마그리트 화풍을 만든 것이 아닐까. 마그리트 덕에 ‘해놔서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필자의 생각을 밀고 나갈 수 있게 됐다.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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