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 경허의 제자로, 수덕사에서 선불교를 일으킨 근대의 선승(禪僧) |
불사를 일으켜 무너진 옛 절들을 다시 세웠으며 불법을 전하는 데 열과 성을 쏟았다. 만공은 사소한 것을 예로 들어 사람들을 가르쳤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만공이 들려주는 법문은 알아듣기 쉬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만공에겐 시봉하는 사미승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어린 동승이었다. 동승은 절 아래 사는 나무꾼들에게서 노래를 배워 오나가나 부르고 다녔다. 그런데 그 노래라는 게 문자 그대로 노골적인 음담(淫談)의 패설가(悖說歌)였다. 듣기 민망했던 신도들은 하루는 만공을 찾아가 동승이 해괴한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일러바쳤다. 만공은 동승을 불러 노래를 불러보라고 일렀다. 신이 난 동승은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들려오는 노래가 다 법문이다
노래를 다 듣고 난 만공은 꾸짖기는커녕 손뼉을 치면서 감탄하며 동승에게 말했다. “그 노래 참 좋은 노래로다.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거라.”
어느 꽃피는 봄날. 궁중의 상궁과 나인들이 수덕사로 내려와 만공의 법문을 듣는 자리에서였다. 만공은 동승을 불러 법당 한 가운데 세우고는 그 ‘딱따구리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다고 한다. 동승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왕궁의 여인들은 재미있다고 웃기도 하고, 너무나 노골적인 노래 가사에 낯을 붉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만공은 법상에 올라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얼핏 들으면 상스런 노래인 것 같지만 이 노래 속에는 여러분을 가르치는 만고불변의 핵심 법문이 깃들여 있소이다. …범부(凡夫) 중생이라 하여도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원래 뚫린 부처의 씨앗(佛種子)임을 모르고 있소. 이 사람들이야말로 뚫려 있는 구멍도 뚫지 못하는, 딱따구리보다 더 어리석은 멍텅구리라 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만공의 법문은 계속 이어졌다.
“뚫려 있는 구멍, 뚫려 있는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이오.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三毒)과 환상의 노예가 되어 버린 어리석은 중생들이야말로 뚫려 있는 구멍을 뚫지도 못하는, 딱따구리보다 못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외다. 진리는 이처럼 가까운데 있소. 대도(大道)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니, 지극히 가깝고, 따라서 이 노래는 뚫린 구멍도 못 찾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기막힌 법곡(法曲)이라 할 것이외다.”
한갓 나무꾼들이 부르는 패설가를 통해, 생나무 구멍을 잘 뚫는 딱따구리를 빗대어 자신의 욕정 하나 제대로 만족시켜줄 줄 모르는 남편을 빈정거리는 육두문자에 빗대어 만공은 불법의 진리를 풀어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 철없던 동승이 바로 진성(眞性), 지난 3월 열반한 수덕사 방장 원담(圓潭) 스님이다. 평생 ‘천진불`로 불렸으니 천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것 같다.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다 법문이요, 삼라만상의 모든 물건이 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법을 만나기가 백천만겁에 어렵다고 하니 그 무슨 불가사의한 도리인가.` 그것이 이 ‘딱따구리 법문`의 가르침이었다.
“부처의 젖을 보고도 못 먹다니”
▲수덕여관. 고 이응로 화백의 옛 집으로 유명한 이 여관은 만공과 김일엽, 나혜석의 이야기가 서려있기도 하다. 나혜석은 이곳에서 1인 시위를 벌였지만 만공은 그녀를 불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특히 물질이 최고인 줄 알아 휘둘리고 사는 지금 같은 시대에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르침을 담은 일화가 더 있다. 수덕사에는 일엽(一葉)이란 이름의 여승이 공부하고 있었다. 일엽과 나란히 법당에 정좌하고 있던 만공이 불상을 쳐다보면서 뜬금없이 말했다.
“부처님의 젖통이 저렇게 크시니 올 겨울 수좌들 양식 걱정은 없겠구나.”
그러자 듣고 있던 일엽이 무심코 입을 열어 물었다.
“무슨 복으로 부처님의 젖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이 무슨 소리인가.”
일엽의 물음에 만공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일엽도 물러서지 않았다.
“복업(福業)을 짓지 않고 어떻게 부처님의 젖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만공은 무릎을 치면서 한탄하며 말했다.
“네가 부처님을 건드리기만 하면서 젖은 얻어먹지도 못하는구나.”
어찌 보면 육담(肉談)과도 같은 말을 통해 만공은 부처님의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 젖은 부처가 설법한 불법의 진리를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불법을 배우겠다고 머리 깎고 승려가 된 수도자가 부처 앞에서 절이나 올리고 합장하여 향이나 사를 뿐 달려들어 부처의 젖통에 안겨 젖을 빨아먹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이렇게 꾸짖었던 것이다. 옳다는 믿음이 생겼으면 구하고 달려들어 찾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불법의 진리를 부처의 젖으로 비유한 만공의 선풍은 그가 덕숭산 꼭대기 정혜사 뜨락에 밥그릇 모양으로 돌을 빚어 만든 수조(水槽)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위 밑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받는 이 수조에 만공은 친필로 이름을 지어 붙였다.
‘불유각(佛乳閣)`.
▲ 불유각(佛乳閣). ‘부처님 젖이 나오는 정자`라는 뜻이니 그 물을 먹는 사람 모두 부처님의 젖을 먹는 것이오, 부처가 설법한 불법의 진리를 먹은 것이니, 자신의 마음 이외에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여기서 잠깐. 일엽이 누구인가. 김일엽, 본명은 원주(元周)로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진남포의 삼숭여학교와 이화학당에서 공부했으며 일본 닛산학교로 유학한 신세대 재원. 24세 때 ‘신여자(新女子)`란 잡지를 창간해 여성 해방을 부르짖은 당대의 페미니스트였던 사람이다. 자유연애를 구가하였지만 결혼에 실패한 뒤 자유연애에 환멸을 느껴 수덕사에 휴양하러 왔다가 만공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일엽은 마침 만공이 세운 견성암에서 여승으로 생애를 마치게 된다. 가수 송춘희 씨가 부른 노래 ‘수덕사의 여승`의 모델이 그녀다.
일엽은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갈 때 한 잎 갈대를 타고 물을 건넜다는 고사에서 따와 만공이 내린 법명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전설적인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오(一葉)가 사망한 1896년에 일엽이 태어났기에 춘원 이광수가 훌륭한 작가가 되라는 뜻으로 지어준 호(號)이기도 하다. 문학가로서의 일엽은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는 만공의 질타에 붓을 꺾었지만 말년에 다시 붓을 들어 심정을 고백한 글, ‘청춘을 불사르고` 등을 썼다.
김일엽 나혜석 이응로 성철 청담…
일엽의 이야기를 꺼냈으니 다른 한 명의 여성 이야기도 마저 해야 하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이다. 결혼에 실패한 아픔을 안고 혜석은 일엽을 찾아 수덕사에 왔고, 일엽을 통해 만공을 만나 그녀 또한 불제자가 되겠다고 간청했다. 하지만 만공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임자는 중노릇 할 사람이 아니야.”
혜석은 수덕여관에 머물며 1인 시위에 들어간다. 그 때 붓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던 그녀를 찾아온 젊은이가 있었으니 고 이응로 화백이었다.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뜨겁던 청년 이응로에게 파리에서 그림공부를 한 혜석은 존경하는 선배이자 최고의 스승이었을 것이다. 혜석은 만공이 끝끝내 받아주지 않자 수덕사를 나와 마곡사로 떠난다. 이응로는 이때의 인연으로 훗날 수덕여관을 인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만공은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을 건립해 훌륭한 여성 수도자를 배출케 한 선각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1941년 가을, 수덕사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한 두 청년 스님이 있었다. 훗날 종정이 되어 불교계를 이끌었던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이었다. 열혈청년이던 둘은 그곳에서 ‘한국 불교가 살 길은 선불교를 중심으로 한 수행가풍을 세우는 것`이라는 데 의기투합한다. 봉암사 결사와 절집에서 일제의 잔재를 걷어낸 정풍운동의 불씨가 수덕사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두 스님이 만공에게서 배운 가르침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만공은 제자, 보월 석영 연등 고봉 금봉 벽초 초부 용음 혜암 원담 등을 불교계의 대들보로 길러냈다. 북쪽 하늘을 비춘 상현달 수월과 남쪽 하늘을 비춘 하현달 혜월과 더불어 사형들과 약속한 대로 만공은 우리나라 중원을 비추는 보름달이 되었던 것이다.
수덕여관을 돌아보면서 내내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일엽은 불제자로 받아들였으면서 혜석은 “안 된다”고 손사래 친 만공의 잣대는 도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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